<아이티특집>아이티와황금

조기영 기자 승인 2024.04.15 17:38 | 최종 수정 2024.04.16 13:37 의견 0

남네바다주립대교수 홍지영


아이티가 폭동과 폭력 그리고 오래된 가난으로 신음하고 있다. 게다가 2024년 일어난 작금의 사태는 오리무중으로,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할 지 모를 지경이다.

아이티와 금광

이 나라는 미국과 중남미 지역 중간에 있는 섬으로, 1492년 콜럼버스가 황금을 찾아 떠나서 발견한 첫 섬 이다. 아이티는 쿠바와 함께 히스파니올라 섬이라고 불렸었다. 아이티는 스페인을 거쳐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 1804년 아이티흑인노예들의 혁명이 시작한 30년 후, 프랑스로부터 식민지 독립에 성공한 세계 최초 흑인공화국이 되었다. 이 혁명 중심에는 부두교와 로마카톨릭교의 두터운 신앙심이 있었고, 특히 부두교는 서아프리카 지역의 신앙체계를 통합한 혼합종교라고 브리태니카 사전에서 밝히고 있다. 과거 헐리웃 영화에서 비춰지던 장난같은 종교는 아니었던 것이다.

콜럼버스가 죽은 500년 후에, 그가 그렇게 찾던 금광이 아이티에서 발견되었다. 가디언지, 제인 리건의 리포트에서 아이티의 금광에 대한 소식은 명확했다. 그녀는 아이티 땅 속에 묻혀 있다가 발견된 ‘금’과 ‘은’이 지진 후의 아이티 사람들을 배부르게 해줄까 기대했었다. 그러나 무정부 상태, 무자비한 갱들아래 신음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아이티는 황금만능주의 세상에서 ‘금’이 있는데도 해결되는 것이 없다.

황금만능주의와 콜럼버스

이탈리아의 상점 점원이었던 콜럼버스. 배 세척과 선원들을 스페인 국왕에게 지원 받았을 때, 황금과 향료를 가져오겠다고 약속한 내용은 흔히 알려진 사실이다. 국왕이 제시한 조건 중에 눈여겨 볼 사항이 있다. 발견한 신대륙에서는 콜롬버스가 총독 지위를 누리고, 식민지 착취에서 나온 이익 중 십분의 일을 그가 획득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콜럼버스는 ‘금’에 관한한 인간성을 상실했었다. 금에대한 욕심으로 과몰입된 콜럼버스가 카리브해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던 인디오 부족들을 멸족하는데 일조했다고 할 수 있다. 미국 역사학자인 ‘하워드 진’의 보고서에서 볼 수 있는 인간의 선과 악. 카리브해 지역 원주민들의 선함과 콜럼버스와 선원들의 악. 그들이 어떻게 선한 사람들을 취급했는지 알렸다. 악한 정복자들은 ‘금’을 발견하지 못하자, 선한 원주민들을 납치해 노예로 부리고 스페인으로 팔아넘겼다. 정복자라는 이름으로 길가에서 이유도 없이 사람들의 목을 베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콜럼버스를 신대륙을 발견한 정복자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콜럼버스는 땅 밑에 있던 금광은 왕노릇하며 죽을 때까지 찾지 못했다.

황금은 왜 아이티를 돕지 못하나?

50-60년대, 아이티에는 뒤발리에라는 독재자가 있었다. 그의 폭정아래 시민들은 교육의 기회가 없었다. 정부가 존재한다고 볼 수 없는 상태인데, 제대로된 교육 시스템이 있을리가 없지 않은가? 독재자 아래 ‘보크사이트’ 채굴 당시의 상황을 보자. 독재자에게 수백만 달러가 입금된 후, 거주민들은 보상없이 쫓겨난 바 있다. 그 당시 쫓겨난 수백 가구는 땅과 집을 잃었고, 사람들의 마음은 상처로 얼룩졌다.

아이티에서 금광이 발견된 라크웨브(Lakwèv)라는 작은마을의 2012년 상태를 보면 이렇다: 50가구가 살고 있었다. 집이라고 부르기보단 초가로 엵힌 지붕에 흙바닥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한 집이다. 아이들의 절반만 학교에 갈 수 있는 경제상태. 가난한 주민들은 커피와 카사바(구황작물 종류)를 경작하며 연명했다. 주민들은 낯선 백인 두명과 아이티인으로 구성된 사람들이 광물표본 채취를 마구해가도 무방비 상태로 지켜볼 뿐이라고 가디언지는 전한다. 기자의 리포트를 읽다보면, 내 집 땅 밑에 있는 ‘금’을 두고도, 여전히 가난할 수 밖에 없는 아이티인들의 상황을 본다.

아이티 갱단이 케냐 파견군을 반대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티 갱단은 케냐군대의 파견을 결사반대하며 케냐군대를 요청하러 출국했던 총리의 사퇴마저 받아냈다. 왜 케냐는 군대를 파견하겠다 했으며, 갱단은 그렇게 반대를 했을까?

AP통신 뉴스를 토대로, 아리엘 헨리 대통력직 취임부터 사퇴를 시간순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021년 조브넬 모이스(Jovenel Moise) 대통령 암살 사건에서, 암살연루자로 강력한 의심을 받던 당시 총리 아리엘 헨리(Ariel Henri)는 미국을 포함한 서구권의 강력한 지지로 대통령직까지 수행하게되었다. 이후 아이티는 헨리 정권을 반대하며 폭동이 끊이질 않았다. 2023년, 아이티의 법과 질서를 회복시킨다는 목적으로, 유엔안전보장 이사회는 1000명의 케냐 보안군을 파견하기로 결정한다. 반목하던 아이티의 갱단이 케냐 보안군을 결사반대하며, 불가능해 보이던 동맹까지 맺고 저항한다. 2023년 11월, 케냐 대통령 에크루 어콧(Ekuru Aukot)은 케냐군대를 아이티 파병하는 것에대해 반대한다. 갱단의 폭력이 더욱 심화되자, 2024년 3월 아리엘 헨리는 케냐 군대 파병을 직접 요청하러 출국 한다. 이에 맞서, 갱단은 수도 포르토 프랑스와 공항을 점령한다. 케냐군대를 그렇게도 반대를 한 이유가 외부군대여서였을까? 미국의 입김이 들어갔다고 판단해서 였을까? 스페인이 카리브해 지역을 포기하고 떠나게 한 ‘미서전쟁’ 이후, 카리브해 지역은 한동안 미국의 주도권 아래 있었다. 아이티도 한동안 미국의 통치권 아래 있었다.

갱 리더: 지미 ’바비큐’ 셰리지에

BBC뉴스에서 주목한 갱 연합 두목이 있다. 전직 경찰이었던, 지미 ‘바비큐’ 셰리지에(Jimmy ‘BBQ’ Cherizier)는 갱단 중 하나인 G-9을 이끌고 있다. 그는 시작부터 유투브에서 G-9 창설을 알린바 있으며, 자신의 메세지를 지속적으로 전파했다. 셰리지에는 알 자지라 뉴스 인터뷰에서는 자신을 ‘혁명가’라고 소개한 바 있다. 지금은 이름대신 흔히 ‘바비큐’라는 별명으로도 부른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치킨바비큐 노점상을 한 이후로 생긴 별명이라고 한다. BBC 뉴스에 의하면, 갱두목 ‘바바큐’는 정부보다 지도력을 잘 발휘할 수 있다 주장했다고 전한다. 갱연합은 아리엘 헨리의 총리 사임을 요구하며, ‘내전과 대량학살’ 경고를 했다. 아리엘 헨리는 2024년 3월 11일 총리직에서 사임한다. 이후, 아이티에 주재하던 유럽연합 대표단과 각국 대사관들이 속속들이 철수 했다. 로이터 뉴스에 따르면, 미국은 전세기를 준비해, 자국민 탈출을 적극 도왔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아이티 갱단 지도자를 만나려던 미국인 유투버인 에디슨 피에르 마로프(Addison Pierre Maalouf)가 이주동안 납치되었다가 만우절인 4월1일에 풀려났다.

아이티의 황금은 무용지물

황금은 과거에도 현제에도 아이티를 구원하지 못했다. 아이티의 갱들은 여전히 폭력적이며 위협적이다. 아이티를 탈출한 한국인들도 아이티 현장의 위험성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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