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곁의 변호사들> - 부산돌려차기사건의 남언호 변호사를 만나다 -

조병철 기자 승인 2024.08.12 13:37 | 최종 수정 2024.09.24 17:33 의견 0


부산 돌려차기 사건, 항소심에서 DNA 감식 결과로 성범죄 혐의 강화

부산 돌려차기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남언호변호사는 1심 판결이 선고된 이후 이 사건을 알게 되었다. 사건의 드러난 사실관계는 처음에는 단순해 보였다. 한 여성이 새벽 귀갓길에서 자신을 뒤따라온 남성에게 폭행을 당한 사건으로만 인식되었다. 그러나 사건을 더 깊이 들여다보면서 이 사건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음을 발견했다. 첫 번째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따라가 돌려차기를 하고 머리를 짓밟아 실신시킨 행위였고, 두 번째는 실신한 피해자를 들쳐메고 CCTV 사각지대로 사라진 후 약 8분간 벌어진 행위였다. 수사단계와 1심 공판에서는 첫 번째 행위에 대해서만 살인미수죄로 법적 판단이 이루어졌으며, 두 번째 행위는 법적 판단의 대상조차 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사건의 절반만이 다루어진 셈이었고, 변호사는 항소심에서 진실을 밝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1심에서 살인미수 혐의가 적용된 사건이 항소심에서 강간살인미수 혐의로 변경된 배경에 대해 변호사는 1심 판결이 폭행 또는 상해 행위에만 집중되어 있었다고 분석했다. 폭행이 매우 심각하고 잔인했기 때문에 사망의 예견 가능성이 인정되어 살인미수로 판결된 것은 다행이었지만, 가해자가 피해자를 들쳐메고 CCTV 사각지대에서 성범죄를 시도했다면 이는 성폭력 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강간살인죄의 미수범으로 처벌받아야 했다. 이후 DNA 감식 결과에서 성범죄 정황이 발견되면서, 혐의가 강간살인미수로 변경되었다.

증거로 제출된 DNA 감식 결과가 사건의 판결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1심에서도 DNA 감식 결과가 제출되었으나 피해자 바지의 겉면에서 가해자의 유전자가 감식되었다는 정도에 그쳤다. 그러나 변호사는 왜 바지 안쪽 부위와 속옷 부위에 대한 감식 결과는 없었는지 의문을 가졌고, 이에 유전자 감식이 형식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판단했다. 변호사는 항소심 재판부에 재감정을 요청했고, 재판부 역시 같은 의문을 가져 경찰서에서 보관 중인 피해자 의복을 확보해 DNA 전면 재감정을 명령했다. 그 결과, 피해자의 청바지 안쪽과 속옷에서 가해자의 DNA가 발견되었으며, 이 증거는 항소심 재판에서 성범죄를 인정하는 핵심 증거로 작용하게 되었다.


일문일답

Q. 증거로 제출된 DNA 감식 결과가 사건의 판결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나요?

사실 1심에서도 DNA 감식 결과가 제출되어 있었습니다. 다만 피해자 바지의 겉면에서 가해자의 유전자가 감식되었다는 결과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가졌던 의문은 왜 바지 안쪽 부위 및 속옷 부위에 대한 감식 결과는 없는가였습니다. 유전자 감식이 형식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하여, 반쪽짜리 DNA 감식이었다고 판단했고, 이에 항소심 재판부에 재감정을 요청드렸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도 같은 의문을 가졌고, 경찰서에서 보관 중인 피해자 의복을 사실상 압수명령에 준하는 조치로 확보하고 검찰을 통해 DNA 전면 재감정을 명령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피해자의 청바지의 안쪽 및 속옷에서 가해자의 DNA가 발견되었고, 항소심 재판에서 성범죄를 인정한 핵심 증거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Q.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항소심에서의 법적 전략은 무엇이었으며, 그 전략이 사건의 판결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시나요?

항소심에서는 CCTV 사각지대에서 이루어진 범행을 밝히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CCTV 사각지대였으므로 직접 증거가 없는 셈이었죠. 하지만 직접 증거가 없는 사건에 대해 심층적인 검토를 해본 결과, 대법원은 직접 증거가 없더라도 간접 증거들이 결합하여 종합적 증명력을 가지는 경우 유죄 판결의 근거로 삼을 수 있다고 판시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우리 사건에도 적용될 수 있는 법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항소심에서는 간접 증거들을 유기적으로 분석한 법률 의견서를 제출하여 성범죄를 입증하는 데 주력하였고, 감사하게도 이러한 노력을 검찰과 법원에서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진실을 밝혀주셨다고 생각합니다.

Q. 가해자 측의 심신미약 주장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셨나요?

가해자는 수사 초기부터 자신은 술에 만취하여 사건 당일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심지어 피해자가 여자인지도 모르고 쫓아갔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불리한 수사관의 질문에는 명확하게 범행을 부인하는 등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진술의 모순점과 일관성이 없는 진술 등을 이유로 가해자의 심신미약 주장은 모두 탄핵하였습니다.

Q. 피해자가 법적 절차를 진행하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피해자는 이 사건 당시 실신하여 기억을 잃어버렸습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지도 모르는 피해자가 사실상 범죄를 증명해야 하는 사법체계가 두려웠고, 그로 인해 매우 힘들어하셨습니다.

Q. 부산 돌려차기 사건을 계기로 법적 혹은 사회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점은 무엇인가요?

부산 돌려차기 사건은 우리 사법체계에 대해 많은 의문점과 숙제를 남겼습니다. 대표적으로 신상정보공개제도가 있습니다. 당시 신상정보공개 관련 법령은 법령의 모호함과 수사기관의 자의적인 법 해석이 개입될 여지가 있어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되었습니다. 또한, 피의자 단계에서 신상정보공개가 가능하더라도, 기소가 되어 피고인 신분이 되면 사실상 신상정보가 공개될 방법이 없는 한계도 있었습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을 계기로 많은 논의들이 있었고, 법무부 및 국회에서도 적극적으로 법 개정에 힘을 써주셔서 지금의 ‘특정중대범죄 피의자 등 신상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이 신설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피해자의 기록열람등사청구권 문제도 있습니다. 충격적이게도, 현행 형사 사법체계에서 당사자는 검사와 피고인일 뿐, 피해자는 사건의 당사자로 분류되지 않습니다. 이는 일반인의 법 감정과 상식에 맞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 피고인과는 달리, 피해자는 사건 관련 기록열람등사를 청구해도 매우 제한적인 사건 기록들만 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피고인의 방어권과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형사소송법 등을 개정하여 피해자에게도 증거 기록 전체를 열람등사할 수 있게 하고, 실질적으로 피해자 의견 진술의 기회를 보장해야 할 것입니다.

Q. 부산 돌려차기 사건을 맡으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나요?

항소심 변론 종결 날, 재판장님의 소송 지휘를 받아 최후 변론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서 피해자는 절규에 가까운 진술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피해자 변호사로서 이 사건의 죄명은 성폭법상 강간살인미수죄가 되어야 하며, 가해자에 대해서는 엄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함을 담담히 밝혀야 했습니다. 피해자의 뜨거운 마음과 변호사로서의 차가운 이성이 공존하는 상태에서 겨우 의견 개진을 마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진실을 마주하기 직전임을 직감하고 터져 나온 피해자의 울음을 듣던 그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Q. 앞으로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법적 대응 방안에 대해 조언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일상이 끔찍한 사건사고로 바뀌는 것은 한순간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증거가 불충분하여 사건의 진실이 은폐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따라서 평소에도 자신이 겪는 일에 대해 기록을 남기는 습관이 있다면 혹시 모를 사건에 대비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통해 법의 뜨거운 논쟁과 개선의 필요성 확인

이번 사건을 통해 얻은 교훈에 대해 변호사는 법이 겉으로는 냉정하게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뜨거운 논쟁의 결과물임을 강조했다. 그는 부산 돌려차기 사건을 통해 현행 사법체계의 모순이 지적되었고, 이로 인해 국회의 입법자들이 제도 개선에 나서게 된 점을 중요한 성과로 보았다. 또한, 한 개인의 사건일지라도 문제점을 발견하고 치열한 논의를 이어간다면, 법의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많은 결점과 문제들을 개선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앞으로의 법률활동 계획에 대해 그는, 많은 사건을 맡아 진행하면서 사람들이 자신의 법적 권리를 제대로 알지 못해 침해당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상황에서 법률가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진실을 찾는 일에 주저하지 않으며 법적 정의를 실현하는 데 기여하고자 하는 의지를 표명했다. 또한, 현행 사법체계의 모순점을 끊임없이 지적하고, 이를 통해 더 나은 제도로 개선되기를 바란다는 목표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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